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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베드카르 평전을 읽고

너는물고기 2008. 12. 15. 00:24
 
암베드카르 평전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게일 옴베트 (필맥,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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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들 (Harijan), 암베드카르


 간디와 맞선 인도 민중의 대부. 책 표지에 떳떳하게 그가 간디와 맞섰다는 소제목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간디는 비폭력주의자로 인도의 아버지라고 할 정도로 민족운동과 인도건국에 힘을 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인도’하면 간디를 떠올릴 정도로 간디를 인도역사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위인으로 생각해왔다. 그런 간디와 맞선 사람은 어떤 업적을 갖은 사람일까? 암베드카르에 대한 호기심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읽는 내내 암베드카르와 간디의 대립에 혀를 차며 간디에 대해 어느 정도의 비난적인 시선을 갖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나는 여기에 가장 큰 주안점을 두었다. 암베드카르를 모른 채 간디를 인도의 아버지라고 칭송해왔던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고, 나 같이 무지한 사람들에게 암베드카르의 업적을 알리고 싶기도 했던 까닭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간디와 대립한 암베드카르의 행적들을 위주로 책을 읽게 되었고, 고심 끝에 ‘신의 아들, 암베드카르’ 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다. 이 제목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 신의 아들(Harijan)이라는 말은 간디가 시작해 암베드카르와 같은 불가촉천민을 부르는 말이었다. 나는 이 감상문의 제목을 ‘불가촉민, 암베드카르’ 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신의 아들로 표현한 것은 불가촉천민으로써 그들의 대표가 되었던 암베드카르를 불가촉천민을 일컫는 신의 아들(Harijan)이 아닌 문자그대로의 의미로 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도의 불가촉천민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신의 아들이었을 것이다. 또 다른 의미로는 간디의 시작으로 불가촉천민을 칭하는 단어가 된 신의 아들(Harijan)이다. 간디는 불가촉천민들을 ‘하리잔’으로 부르자는 운동을 펼쳤지만 당시 불가촉천민들은 ‘달리트’라는 호칭이 있었고, 정작 ‘하리잔’으로 불리기를 원치 않았다고 한다. 이 점으로만 보아도 간디가 불가촉천민을 대변하지는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제목에 하리잔을 사용함으로써 간디가 펼친 불가촉천민에 대한 운동들이 불가촉천민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지 못했다는 점을 함축하기도 한 것이다. 나는 ‘신의 아들(Harijan), 암베드카르’를 통해 간디와는 다르게 실질적으로 불가촉천민을 대변한 운동을 펼친 암베드카르의 업적과 그와 대립구조를 취한 간디에 대해 약간의 비판을 함으로써 암베드카르가 부상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인도에 갇힌 암베드카르


 암베드카르.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게 들리는 이름이지만 인도에서는 그 어떤 위인들보다 암베드카르의 동상이 많다. 우리가 인도하면 흔히 떠올리는 간디보다도 암베드카르의 동상이 많다. 인도에서는 암베드카르와 간디를 불가촉천민을 위해 투쟁한 양대 산맥으로 보고 흔히 대비하는데, 달리트들은 암베드카르를 고작 간디 정도의 인물과 비교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간디 이상으로 추대 받는 암베드카르는 어떤 인물일까. 암베드카르에 대해 이 전에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그렇게 위대한 인물이 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의문이었던 것이 그 후에는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불가촉천민이라는 이유와 그가 힌두교에서 개종선언을 함으로써 인도사회의 민족주의자들에게 낙인이 찍혔기 때문일 것 이다. 인도에는 카스트 제도가 있다. 카스트 제도란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계급으로 나눠지는 인도의 전통적인 신분제도인데, 이 네 단계에 속하지 못한 최하층에 불가촉천민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상상도 못할 정도의 취급을 받으며 짐승처럼 살아야만 했다. 암베드카르는 그 계급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평생을 불가촉천민의 해방을 위해 싸웠다. 암베드카르가 불가촉천민을 위한 투쟁이 아닌 힌두교를 위해 헌신했다면 그는 지금쯤 간디에 버금가는 위인으로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불가촉천민을 위해 달리트의 대표로서 투쟁을 해왔고, 많은 것을 이뤄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인도에서 그의 동상은 달리트들에게 자긍심이 되고 민중의 아버지의 상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암베드카르의 이름은 인도에 갇혀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간디를 인도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지금,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지만 인도에서 억압과 착취를 받는 달리트들에게는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은 아름답고 그 가치가 있다.


 

-신의 아들(Harijan)과 간디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의 자제로 태어났다. 하지만 불가촉천민의 신분으로써 콜럼비아와 런던등의 대학에서 경제학과 정치학 학위를 취득했고 변호사가 되어, 불가촉천민의 인권을 위해 운동하는 지도자로서 살아갔다. 암베드카르의 부모님은 그가 미래에 이런 투쟁에 앞장서 불가촉천민의 설움을 해소해주기를 바라며 그에게 자신들이 받지 못한 교육을 열성적으로 시킨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불가촉천민들은 억압받는 사람들, 학대받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달리트’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간디는 달리트들을 ‘하리잔’이라 부르는 운동을 펼쳤는데, 하리잔은 힌두교의 용어로 ‘신의 아들’의 뜻을 갖고 있었다. 힌두교의 경전은 불가촉천민에게 신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하고 있는데, 신의 아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생겨난 신의 아들들은 카스트 인들과는 접촉과 대화를 할 수 없고 공공시설, 심지어는 공동우물 등도 사용할 수 없는 존재였다. 간디는 그들을 하리잔으로 부름으로써 그들에 대한 박해를 비난하고자 했지만 정작 그들이 원하는 것은 명칭을 바꿈으로써 박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제도상의 문제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간디는 달리트들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달리트가 힌두교라는 큰 울타리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에 대해 단호히 반대했다. 이 점이 암베드카르와 간디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간디는 카스트계급 중 하나인 바이샤였다. 그리고 인도의 이익보다는 종교적인 측면에 치우친 성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인민들을 옭아매는 카스트제도는 힌두교의 교리에 의해 숙명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힌두교적 측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암베드카르는 카스트 제도 자체를 파괴해야 된다고 생각했으며, 달리트들에게 힌두교에 머물 필요가 없다며 개종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런 대조되는 가치관부터 시작해 간디와 암베드카르는 수차례 대립을 하게 된다. 달리트로써 그들의 설움과 아픔을 알고 있는 암베드카르는 진취적인데 반해, 바이샤계급인 간디의 방식은 전적으로 후견자 적이었으며 막연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것은 간디의 반공업주의적 성격에서도 볼 수 있다. 간디는 공업사회를 혐오했지만 달리트에게 공업사회는 탈출구가 될 수 있었다. 나는 간디가 실질적으로 달리트들을 위해 이룩해 낸 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간디에 대한 비판을 하며 책을 읽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간디는 달리트들의 비인간적인 삶에 대해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막연하게 동정을 느끼는 것과 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둘의 대립은 개종문제로 인해 정면으로 대결하게 된다. 달리트들에게 있어서 힌두교는 카스트제도와 분리될 수 없었기 때문에 힌두교를 떠나는 것이 당연지사였고 민족종교란 이유로 억지로 힌두교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개종결의를 하게 된다. 간디는 힌두교를 거부하는 암베드카르를 비난했고 달리트들을 맹목적으로 따라간다고 비난했다. 그가 진정 달리트들의 인권을 위해 투쟁했다면 결코 비난할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간디는 종교에 찌들어 있었기 때문에 개종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간디의 행적에는 모순이 많다. 종교에 대한 자유, 평등을 위해서는 힌두교를 버릴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면서도 정작 행동하는 것에 있어서는 힌두교를 옹호하고 카스트제도에 대해서는 약간의 미화를 하는 형태일 뿐 힌두교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간디의 단식투쟁 또한 비폭력주의인 그의 가치관과는 차이가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점에서 간디를 맹렬히 비난하고 싶다. 암베드카르는 “간디의 시대는 인도의 암흑기였다.”라는 말을 했다. 암흑기로 표현한 그 시대는 간디의 미래지향적이지 않고 옛날로 회귀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고 달리트들에게는 그것이 암흑과도 같았던 것이다. 나는 암베드카르의 용기와 간디와는 달리 언행일치가 되는 모습이 더욱 멋지다고 느껴졌다.



 

-신의 아들, 암베드카르


 1956년 12월 6일. 암베드카르는 사망한다. 그의 장례식에는 거대한 애도의 인파가 모였고, 전 인도의 달리트들은 자기 아버지가 죽은 것처럼 통곡했다. 달리트들에게 그는 자기 아버지와도 같았고 하늘에서 내려 준 신의 아들과도 같았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가장 억압받는 집단, 달리트들의 해방을 위한 운동이었다. 그리하여 달리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아버지로 남아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달리트들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앞으로 건설될 새로운 국가형태에 초점을 맞추어 투쟁한 것이다. 암베드카르는 인도에서 달리트의 지도자. 그 이상의 업적을 이룩했다.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 인도 전체의 국민적 지도자 역할을 했다. 카스트제도는 물론이고 여성문제를 비롯한 억압받는 소수집단과 파키스탄 건설에 대한 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모든 면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인도를 위해 일을 수행해냈다. 암베드카르의 투쟁은 공동우물에서 단순히 식수를 요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런 간단한 권리를 위해 싸우기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인도를 떠들썩하게 만들면서 여러 가지 시정을 이룩해낸 암베드카르는 혼란한 인도를 위해 신이 내려 준 아들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았던 불가촉천민의 계급에서 그 계급을 장벽을 넘어 인도의 독립운동에 힘쓴 암베드카르. 인도 전통사회에 민족종교인 힌두교의 계급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한 암베드카르. 분명 이러한 것을 이룩하는 데에는 많은 탄압과 핍박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를 숭배하고 기리는 많은 달리트들과 인도인들은 그의 용기와 진취적인 모습, 그리고 희생정신을 칭송하는 것이리라. 역사적으로 보면 어린 시절이 불우했다거나 많은 역경을 거친 사람들이 장차 영웅이 되곤 한다. 힘들었던 시기를 이겨낸 것이 자극이 돼서 일까.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 억압받으며 자랐고 힘들게 공부한 학창시절이 암베드카르에게 에너지로 작용했던 탓인지, 그는 공부를 마친 후에도 순탄한 길이 아닌 직접 자갈밭을 골라 걷기를 택했다. 그 자갈들을 골라내며 넘어지고 다치기도 했지만, 그가 닦은 길을 따라 걷는 많은 달리트들이 상처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달리트들을 위해 자기를 애써 희생한 혁명가이자 투쟁가이며 따뜻한 아버지였던 것이다.



  간디는 이 하리잔 출신의 암베드카르를 자신의 행동방향에 거스르는 일종의 젊은 피의 반항아 같은 의미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항상 자기 자신이 하는 일은 옳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베드카르의 평전을 읽은 나로서는 간디를 인도의 위대한 영혼으로 여겼던 것을 후회하며 간디에 대해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간디의 평전을 읽는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암베드카르의 평전을 읽은 평은 간디를 비난하고 암베드카르의 위대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나라의 역사건 신분제를 폐지하려는 운동은 빠지지 않는다. 차티스트 운동, 프랑스대혁명, 흑인민권운동, 태평천국운동 등 역사 속에는 평등을 요구하는 운동이 있어왔다. 하지만 힌두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들은 평등사상을 기저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 성격이 틀리다. 게다가 인도와 같이 종교와 민족이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던 나라도 없었다. 암베드카르는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하려 했지만 적용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다른 나라에는 유래가 없는 혹독한 신분제에 대해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카스트제도에 대해서는 고등학교에서도 배웠기 때문에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이외에 또 다른 계층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자료를 찾아보면 수천가지로도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그 또 다른 계층인 불가촉민들이 겪는 수모는 서양의 흑인들을 괄시하던 것보다도 혹독했고 투표권의 평등을 요구하는 것과는 달리 진정한 의미의 인간의 존엄성을 확보하려는 운동이었다. 인간으로서 행할 수 있는 기본적인 행위를 누군가에게 투쟁으로서 허락받아야 한다는 것은 지금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동학농민운동이 이와 같은 예로 들 수 있다.  농민의 신분으로 태어나 불평등한 조약들과 착취에 못 이겨 봉기를 일으킨 전봉준은 소외계층이었다는 점에서 암베드카르와 비슷하다. 물론 불가촉민에 대한 대우는 어떤 나라의 사례에도 비길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처럼 다른 나라들보다 몇 배로 힘든 자유 투쟁을 벌였던 인도의 달리트들, 그리고 그들의 지도자 암베드카르. 비록 간디의 그림자에 가리어져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지는 못하지만, 많은 달리트들, 그리고 전세계의 억압받고 있었던 계층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준 그의 업적은 그들의 가슴속에 더 큰 감사와 숭배로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나는 간디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암베드카르에 대해서도 이 평전을 통해 처음 접해보았다. 그런 까닭에 간디에 대해 좋지 못한 감정을 갖게 되었지만, 앞으로 간디에 대한 평전도 접해서 민족운동가로서의 존중을 하도록 할 것이다. 앞으로는 간디뿐만이 아니라 암베드카르도 위대한 인도의 운동가로 인도에만 갇혀있는 이름이 아닌 전세계적으로 위상을 떨치는 위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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