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한큐전차 - 편도 15분의 기적 (阪急電車−片道15分の奇跡)


오랫만에 본 일본영화. 상당히 일본영화스러웠다.
보면서 살짝 졸립기도 하지만 눈을 뗄 수는 없고, 의미도 모른채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다 보고 나서는 몇일 째 머릿속에 맴도는 일본영화의 묘미.

오사카의 한큐전차의 노선중 편도 15분 (역으로는 8개 밖에 되지 않는) 노선을 타는 사람들 저마다의 이야기이다.
글쎄 작가가 왜 하필. 오사카의 한큐전차. 그것도 편도가 15분밖에 되지않는 이마즈(今津)선을 소재로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계기가 있었든 '아직 세상은 따뜻하다' 라는 느낌을 전달하기에 적합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영화속의 편도 15분선은 바로 이 부분이다.
니시노미야키타구치(西宮北口)부터 다카라즈카(宝塚)에 이르는 선.
오사카에 사는 사람이라도 흔히 이선을 타는 경우는 흔치않을 것이다.
다카라즈카 연극을 보러간다거나 고급음식점에 가기 위함이 아니라면 (물론 그경우 차를 이용하기도 하겠다)
쉽게 이용하지 않는 노선이기도 하고, 도심에서 약간 떨어진 곳으로 아직까지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숨쉬는 곳이랄까.

나도 이 선을 직접 타본적은 없지만 고베에 가는 길에 니시노미야키타구치를 몇번 지나가본지라 어쩐지 반가운 기분이었다.


-


영화는 나카타니 미키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극중 이름은 쇼쿄. 32세의 OL이다.
3년간 사귀어오며 결혼까지 준비했던 남자가 헤어지자며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와 함께 나타났다.




뻔뻔하게도 이 남자. '大丈夫やろ。泣かへんし’  (괜찮잖아 너는 울지도 않으니까) 라고 오사카벤을 상당히 마초적으로 내뱉는다.
두둥- 이 순간 나는 이 영화에 매료된다. 시작 오분도 되지 않았다.
32살의 OL로 살려면 당당해야하고 눈물을 참는법쯤은 알아야한다.
눈물이 없어서가 아니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단 말이다. (이때부터 감정이입)


결국 쇼코는 둘에게 조건으로 결혼식에 초대해달라고 한다.
그리고 결혼식날 지극히 실연당한 여자의 마음으로 신부보다 더 예쁜 차림으로 결혼식장에 나타난다.
물론 헤어진 남자친구에게는 후회의 마음을. 그리고 신부에게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주고자.



그런데 이장면이 왜이렇게 처량한지. 쇼코는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가려고 전차를 기다린다.
낡은 '다카라즈카 미나미구치' 역과는 상당히 이질스러운 하얀 웨딩드레스의 모습.
독한 맘으로 결혼식장까지 찾아갔지만 결국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혼자' 서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탄 지하철에서 만난 할머니. 사연이 있어보이는 쇼코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노라 자처하고
묵묵히 그녀의 편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생전 처음보는 타인에게서 위안을 받는 쇼코.

할머니 역시 사연있는 분이다. 남편을 잃고 혼자사시는데, 아들부부와 사이가 좋지않다.
매일 손녀딸을 돌보는 역할을 할 뿐인데 주옥같은 대사를 마구 던져주신다.


전철안에서 여자친구에게 DV를 가하는 남자를 보고 깜짝놀라 우는 손녀딸에게
니가 잘못하게 아니니 맘껏 울으라고 달래더니 이윽고 하시는 말씀.
'泣くのはいい。でも自分の意思で涙を止められる女になりなさい' 
(우는 것은 좋아. 그렇지만 자기 의지로 울음을 그칠 수 있는 여자가 되렴)


할머니는 이 후에 매번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매너없는 아줌마들을 대상으로 일침을 가하시는데,
그 장면이 그렇게 슬펐던 건 왜일까. 불의를 보고도 남일이니 신경을 끄고 사는 요즘같은 시대에.
어르신이 따끔하게 충고를 하는 모습.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데 그 모습이 뭉클했던 걸 보면 어른들에게 충고듣기도 어려운 요즘인가보다.



이밖에도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초등학생, 남자친구에게 DV 당하는 여대생, 고교진학을 앞둔 여고생,
학교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군사오타쿠와 야생초오타쿠. 아들을 위해 억지로 학부모 모임에 끌려다니며 고생하는 주부.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저마다의 사연에 가슴 찡하는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무튼 결론적으로는 모두 이 전차를 이용하면서 만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 웃음을 되찾게 되고,
또 그렇게 누군가를 돕게된다는 훈훈하디 훈훈한 이야기이다.

각박해서 고독하게만 여겨지던 세상이지만 아직 세상은 따뜻하며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
소설책에서는 모든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세밀하게 다뤄진다고하니 나중에 소설책도 한번 읽어봐야지!



한큐전차 편도 15분의 기적

Hankyu Railway - A 15-Minute Miracle 
9.4
감독
미야케 요시시게
출연
나카타니 미키, 토다 에리카, 미야모토 노부코, 미나미 카호, 타마야마 테츠지
정보
드라마, 로맨스/멜로 | 일본 | 118 분 | -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